역사 속에서의 프로폴리스

아리스토텔레스와 꿀벌 관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며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랜 시간 벌집을 관찰하며 벌들의 행동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가 벌꿀들의 세계에서 감탄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기하학적인 건축 감각, 꿀, 밀랍, 프로폴리스, 로열젤리, 화분 같은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능력, 사회적 결속력과 연대 의식, 자신의 도시(집)를 방어하기 위해 적에게 침을 박아 넣으며 자신은 죽는 희생정신까지 꿀벌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동물의 역사>를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우두머리 격인 왕은 완벽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춘 벌집에서 통치의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벌집에는 일꾼, 병사, 탐험가, 보육사 등등으로 세분된 구성원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공동체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으로 분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어린 제자인 알렉산더 왕자에게 철학과 수학 그리고 정치와 전략 등에 가르침을 주었고 덕분에 알렉산더는 뛰어난 사령관의 면모를 보이며 자랐고 훗날 넓은 땅을 정복하는 대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로폴리스와 고대 의학
프로폴리스가 서양의 역사 속 기록에는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B.C406-377)가 프로폴리스를 통증과 궤양 치료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 「동물지」에서 피부질환과 감염증 등에 사용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플리니우스(AD23-79), 「자연의 역사」에서 “프로폴리스가 살에 묻어 있는 나쁜 물질과 자극을 없애 주며 부어오른 부종을 낫게 하며, 단단하게 굳어진 조직을 연화 시키며, 통증을 없애 주고 쉽게 치료되지 않는 갖가지 통증을 낫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자세하게 기술한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11세기 이란의 철학자인 아비센나, “프로폴리스는 화살이나 가시를 뺀 자리에 발라주면 덧나지 않고 통증도 진정된다 ”라는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12세기 전반 남미 안데스산맥의 잉카제국에서도 프로폴리스를 발열성 감염증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6.18-19세기의 프랑스에서는 전쟁에서 다친 병사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프로폴리스를 바셀린과 섞어 사용했다고 한다.

프로폴리스의 현대적 평가
현대에 와서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생화학교수인 레미 쇼 방(RemmySauvin)은 1966년도에 발표한 「프로폴리스의 임상효과에 대하여」 라는 논문에서 “사과 상자 정도 크기의 벌 통속에는 20,000마리 정도의 꿀벌이 밀집된 형태로 살고 있고 내부 온도는 섭씨 32도 정도에다 습도도 매우 높아 세균이 발생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벌통 속에는 아무런 세균도 살고 있지 않다” 라고 기술하며 천연항생제로서의 가능성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는 특히 동유럽에서 전통 민간요법(folk remedy)으로 프로폴리스를 사용했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서유럽보다 의약품이 다소 부족했던 러시아를 포함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더욱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항생 효능이 있는 프로폴리스를 민간요법으로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라고 알려져 있다.

동양에서의 프로폴리스 사용
한편, 동양에서는 조선 시대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에서 프로폴리스를 노봉방(露蜂房)이라 칭하고 외형편(外形篇) 아치(牙齒)에서 어금니와 충통(虫痛)을 탕액편(湯液篇) 충부(蟲部)에서 경간(驚癎;경기와 간질), 계종(瘈瘲;놀람으로 인한 팔다리 떨림 증세), 옹종(癰瘲;등창과 종기), 유용(乳癰;유방종기,유선염,유방암), 치통(齒痛), 악창(惡瘡;악성 부스럼)을 치료한다고 기록하였다.

프로폴리스 연구의 미래 전망
이렇듯 프로폴리스는 동서양에 걸쳐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고, 현대에 와서 과학적 평가에 힘입어 그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벌이 나무의 수지를 이용해 프로폴리스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대한 과학적 해석이 부족하고 그 프로폴리스가 함유한 다양한 구성물질에 대한 분석과 인체 작용 기전은 아직 다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프로폴리스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글. 허용갑>
역사 속에서의 프로폴리스
아리스토텔레스와 꿀벌 관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며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랜 시간 벌집을 관찰하며 벌들의 행동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가 벌꿀들의 세계에서 감탄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기하학적인 건축 감각, 꿀, 밀랍, 프로폴리스, 로열젤리, 화분 같은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능력, 사회적 결속력과 연대 의식, 자신의 도시(집)를 방어하기 위해 적에게 침을 박아 넣으며 자신은 죽는 희생정신까지 꿀벌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동물의 역사>를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우두머리 격인 왕은 완벽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춘 벌집에서 통치의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벌집에는 일꾼, 병사, 탐험가, 보육사 등등으로 세분된 구성원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공동체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으로 분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어린 제자인 알렉산더 왕자에게 철학과 수학 그리고 정치와 전략 등에 가르침을 주었고 덕분에 알렉산더는 뛰어난 사령관의 면모를 보이며 자랐고 훗날 넓은 땅을 정복하는 대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로폴리스와 고대 의학
프로폴리스가 서양의 역사 속 기록에는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B.C406-377)가 프로폴리스를 통증과 궤양 치료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 「동물지」에서 피부질환과 감염증 등에 사용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플리니우스(AD23-79), 「자연의 역사」에서 “프로폴리스가 살에 묻어 있는 나쁜 물질과 자극을 없애 주며 부어오른 부종을 낫게 하며, 단단하게 굳어진 조직을 연화 시키며, 통증을 없애 주고 쉽게 치료되지 않는 갖가지 통증을 낫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자세하게 기술한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11세기 이란의 철학자인 아비센나, “프로폴리스는 화살이나 가시를 뺀 자리에 발라주면 덧나지 않고 통증도 진정된다 ”라는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12세기 전반 남미 안데스산맥의 잉카제국에서도 프로폴리스를 발열성 감염증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6.18-19세기의 프랑스에서는 전쟁에서 다친 병사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프로폴리스를 바셀린과 섞어 사용했다고 한다.
프로폴리스의 현대적 평가
현대에 와서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생화학교수인 레미 쇼 방(RemmySauvin)은 1966년도에 발표한 「프로폴리스의 임상효과에 대하여」 라는 논문에서 “사과 상자 정도 크기의 벌 통속에는 20,000마리 정도의 꿀벌이 밀집된 형태로 살고 있고 내부 온도는 섭씨 32도 정도에다 습도도 매우 높아 세균이 발생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벌통 속에는 아무런 세균도 살고 있지 않다” 라고 기술하며 천연항생제로서의 가능성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는 특히 동유럽에서 전통 민간요법(folk remedy)으로 프로폴리스를 사용했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서유럽보다 의약품이 다소 부족했던 러시아를 포함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더욱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항생 효능이 있는 프로폴리스를 민간요법으로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라고 알려져 있다.
동양에서의 프로폴리스 사용
한편, 동양에서는 조선 시대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에서 프로폴리스를 노봉방(露蜂房)이라 칭하고 외형편(外形篇) 아치(牙齒)에서 어금니와 충통(虫痛)을 탕액편(湯液篇) 충부(蟲部)에서 경간(驚癎;경기와 간질), 계종(瘈瘲;놀람으로 인한 팔다리 떨림 증세), 옹종(癰瘲;등창과 종기), 유용(乳癰;유방종기,유선염,유방암), 치통(齒痛), 악창(惡瘡;악성 부스럼)을 치료한다고 기록하였다.
프로폴리스 연구의 미래 전망
이렇듯 프로폴리스는 동서양에 걸쳐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고, 현대에 와서 과학적 평가에 힘입어 그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벌이 나무의 수지를 이용해 프로폴리스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대한 과학적 해석이 부족하고 그 프로폴리스가 함유한 다양한 구성물질에 대한 분석과 인체 작용 기전은 아직 다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프로폴리스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글. 허용갑>